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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장소, 사라진 가게들을 기록하는 시니어 도시기록자들

by luna0505 2025. 8. 13.

세월이 흐르면 도시의 풍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한때 자주 드나들던 분식집, 첫 월급으로 친구와 케이크를 사 먹던 제과점,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문방구까지, 어느새 간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변화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사라져가는 장소와 이야기를 기록하는 시니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이 작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흔적을 보존하는 작은 역사 쓰기이자, 세대 간의 기억을 잇는 다리다.

추억의 장소, 사라진 가게들을 기록하는 시니어 도시기록자들
추억의 장소, 사라진 가게들을 기록하는 시니어 도시기록자들

 

1. 카메라와 수첩으로 기록하는 ‘동네의 연대기’


시니어 도시기록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평생 살아온 동네를 대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보아온 거리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시 걸으면 전혀 새로운 시선이 열린다. 낡은 간판의 서체, 벽돌담의 색, 오래된 가게의 문손잡이 같은 사소한 디테일까지도 기록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사라져가는 풍경을 단순히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다. 사진 뒤에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화, 당시의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까지 글로 덧붙인다. 예를 들어, “1978년 여름, 이 분식집 앞에서 처음으로 친구와 떡볶이를 먹었다. 그날은 비가 왔고, 주인아주머니가 서비스로 어묵 국물을 더 주셨다”는 식이다. 이런 기록은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라, 그 시절의 공기와 감정을 함께 담아낸다.

 

또한 그들은 변화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라본다. 10년 전 사진과 현재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거나, 가게 주인에게 인터뷰를 청해 영업 시작과 폐업의 사연을 듣는다. 그 과정에서 도시기록자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동네의 이야기꾼이자 구술사의 수집가가 된다. 이렇게 모인 기록은 훗날 누군가에게 귀중한 생활사 자료가 된다.

 

2. 사진 속에 남은 사라진 장소의 의미


사라진 가게의 사진은 단순히 옛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단서다. 예를 들어, 1980~90년대 동네 빵집 간판에는 ‘제과점’이라는 단어가 크게 쓰였고, 유리 진열대에는 모형 케이크가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의 소비 문화와 디자인 감각을 이해하는 데 이런 사진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시니어 도시기록자들은 장소를 기록할 때, 반드시 그 장소가 가진 ‘맥락’을 남기려 한다. 단순히 ‘이곳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담는다. 동네의 작은 레코드점이 당시 청춘들에게 음악을 배우고 교류하는 공간이었다는 사실, 한약방이 마을의 건강을 책임지던 시절의 이야기, 구멍가게 앞에서 여름밤 빙수를 나눠 먹던 기억까지…

 

이런 기록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을 복원하는 힘이 있다. 사라진 장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곧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니어 도시기록자들의 작업은 단순한 ‘취미 사진’이 아니라, 생활사와 문화사를 잇는 시민 아카이브 활동이 된다.

 

3. 나만의 기록에서 ‘공유의 역사’로

처음에는 개인적인 추억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기록이, 점차 많은 사람과 공유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시니어 도시기록자들은 블로그나 SNS에 사진과 이야기를 올려, 같은 동네를 경험한 사람들이 댓글로 기억을 보태도록 한다. “이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를 사던 시절이 그립다”거나 “여기 주인아저씨가 참 친절하셨지” 같은 반응이 이어지면, 기록은 더욱 풍부해지고 생생해진다.

 

또한, 이런 활동은 세대 간 대화의 장을 열어준다. 손주 세대에게는 낯선 ‘옛날 동네’를 보여주며, 당시의 물가, 유행, 생활상을 이야기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단절되기 쉬운 세대 간 경험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최근에는 일부 시니어 도시기록자들이 지역 도서관, 문화원과 협력해 ‘동네 기억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이 전시회에서는 사진과 글뿐만 아니라 당시 가게에서 쓰던 물건, 메뉴판, 포장지 같은 실물 자료도 함께 전시된다. 이를 본 사람들은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며 감탄한다. 이처럼 사적인 기록이 공공의 기억이 되는 순간, 개인의 취미는 지역의 역사를 지키는 소중한 문화 활동으로 확장된다.


도시의 풍경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 풍경은 그 자리에 머문다. 시니어 도시기록자들이 하는 일은 바로 그 기억을 붙잡아,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일이다. 사라진 가게 한 곳, 오래된 골목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잊지 않게 하는 일이다.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걷는 그들의 발걸음 속에서, 도시는 오늘도 조용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