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가꾸기, 텃밭 관리, 화분 손질.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시니어들의 대표적인 취미들이다. 그러나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것을 넘어, 그 성장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가드닝 다이어리’라는 새로운 형태의 취미가 주목받고 있다. 식물의 변화를 관찰하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정원의 표정을 노트에 옮기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고 명상이다. 이 글에서는 시니어들이 가드닝 다이어리를 통해 자연과 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정원 기록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조명해본다.
1. 단순한 정원 가꾸기를 넘어 ‘기록’으로 향하는 시선
오랜 시간 정원을 가꿔 온 시니어들에게 있어, 흙을 만지고 물을 주며 식물과 교감하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정원의 변화나 식물의 반응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단지 어느 날 꽃이 피었는지를 적는 것을 넘어, 어느 시기에 어떤 비료를 사용했는지, 날씨 변화에 식물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어떤 날은 왜 잎이 누렇게 변했는지 등을 관찰하며 쓰는 것이 바로 가드닝 다이어리다.
이 취미는 단순한 육체적 활동이 아닌, 인지적·감정적 활동으로 이어진다는 데서 그 깊이가 더해진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식물을 유심히 바라보아야 하고, 변화의 원인을 생각하게 되며, 그 과정을 다시 글이나 그림으로 풀어야 한다. 어떤 시니어는 “예전엔 식물이 시들면 그냥 지나쳤지만, 지금은 그 원인을 기록하고 분석하게 된다. 마치 연구자가 된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원 활동이 단순 노동에서 사고의 취미로 전환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기록은 기억의 확장이다. 우리는 계절마다 같은 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해마다의 개화 시기, 날씨, 해충의 종류는 조금씩 다르다. 그런 차이를 해마다 노트에 기록해두면,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나서 정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는 일기와도 같지만, 자연을 함께 기록하는 일기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2. 가드닝 다이어리, 계절의 흐름을 감각하는 가장 섬세한 방식
가드닝 다이어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의 순환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계절 변화가 정원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봄에는 어떤 꽃이 가장 먼저 피었는지, 여름 장마철에는 물빠짐이 잘 되었는지, 가을엔 나뭇잎이 어떤 빛깔로 물들었는지, 겨울엔 어떤 식물이 끝까지 생명을 유지했는지 등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다 보면, 계절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식물 관찰을 넘어, 자연과 나 사이의 리듬을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아침마다 정원을 둘러보고 작은 변화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일은, 하루의 시작을 긍정적인 루틴으로 만들어준다. 날씨에 따라 오늘의 정원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습관은, 몸뿐 아니라 마음의 흐름까지 자연과 맞추게 만든다.
또한 계절별로 정리된 가드닝 루틴을 만들어두면, 해마다 반복되는 정원 일에도 질서와 흐름이 생긴다. 예를 들어 봄이 되면 어떤 씨앗을 언제 뿌렸는지, 어느 시기에 벌레가 생기기 시작했는지, 여름에 어떤 해충 방제가 효과적이었는지 등의 정보는 기록 없이는 잊기 쉽다. 하지만 다이어리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는 다음 해 정원 관리에 큰 도움이 되며, 나만의 정원 ‘지식 백과사전’으로 발전해 나간다.
이러한 기록은 단지 실용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는 매년 꽃이 피는 날짜를 기록해 꽃다발처럼 엮어두고, 누군가는 식물별로 이름표와 함께 일러스트를 곁들여 다이어리를 꾸미기도 한다. 이는 단지 식물의 성장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감각,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해석을 함께 담아내는 예술 행위이기도 하다.
3. 느리게 걷는 삶, 자연과 소통하는 마음의 창으로
가드닝 다이어리를 쓰는 시니어들의 공통된 이야기 중 하나는 기록을 하면서 내가 더 많이 웃게 되었다는 점이다. 식물의 작은 성장을 기뻐하게 되고, 예전 같으면 지나쳤을 미세한 변화에도 감탄하게 된다. 이는 일상에서의 감정 감도가 높아졌다는 의미이며,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 기록은 외부와의 소통 창구가 되기도 한다. 손주에게 식물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지역 커뮤니티에 사진과 글을 공유하면서 나눔의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어떤 시니어는 자신의 정원 다이어리를 책으로 자비 출판해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또 다른 이는 SNS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정원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는 시니어의 일상이 외부 세계와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정원 다이어리는 ‘내가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실존의 증거를 매일매일 남기는 일과도 같다. 자연의 순환과 함께 움직이는 삶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불안감을 완화하며,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특히 은퇴 후 무기력함이나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니어들에게는, 이처럼 자율적이면서도 정서적 성취를 주는 취미가 매우 적합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취미가 기술이나 경험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은 화분 하나에서부터, 몇 평 남짓한 텃밭, 또는 아파트 베란다까지 어디서든 가능하며, 일기장 하나와 펜만 있으면 준비는 끝난다. 여기에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보태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자연 기록이 완성된다.